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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기도와 기대</title><script language="java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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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dy onload="javascript:gotoAlbum();"><a href="viewContents.asp?seq=114984&amp;path=&amp;page=1&amp;vmode=full">1page</a><br><br> <br><a href="viewContents.asp?seq=114984&amp;path=&amp;page=2&amp;vmode=full">2page</a><br><br> 01. 돼지아빠///////////////////////6  02. 상사리///////////////////////16  03. 청학농예원////////////////34  Table of Contents <br><a href="viewContents.asp?seq=114984&amp;path=&amp;page=3&amp;vmode=full">3page</a><br><br> 새벽기도. 어머니와 함께 새벽기도를 나갔다. 겨울의 시작점에 들어선 날씨는 새벽부터 온 몸을 움츠리게 했다. 다 늙어 머리빠진 논은 새벽바람에 먼지를 올려놓는다. 일동 동부교회로 차를 몰아 어머님을 모시고 간 새벽기도에는 그리 많지 않는 사람들 이 새벽을 깨우면서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려고 모였있었다. 나는 맨 뒤자리에  자리를 잡았고, 나의 어머니는 내 앞에 자리를 잡았다. 목사님의 설교가 끝나고  불이 꺼진후 사람들은 어둠속에서 은밀한 기도제목들을 꺼내어 기도하기 시작했 다. 나도 기도를 했다. 하지만 머리속에 많은 생각들이 가득차서 기도가 되지 않 았다. 그래서 눈을 떴다.  캄캄한 시아가 점점 흐릇한 윤곽들을 잡아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그 리고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거의 모든 분들이 내 어머니와 같은 이세상의 어머니 들이였다. 세월앞에 허리가 굽고 노창해진 우리의 어머니들은 차가운 교회 바닦 에 방석을 깔고 기도를 하시고 계셨다. 기억한다, 내가 아주 어렸을때 부터 나는 내 어머니의 기도소리를 들으면서 자라 났다. 조금 열린 문틈으로 부터 들려오는 어머니의 기도소리...주문을 외우는 듯 한 방언의 소리와 흐느끼는 어머니의 기도소리에 어린 나는 무섭고 슬폈다.  내 어머니는 이제 고생을 많이 하셔서 할머니가 다 되셨다. 피부는 검고 주름은  세월을 셀수 있을만큼 많아지셨다. 기력은 점점 떨어져 이제는 새벽에 일어나시 는것을 힘들어 하신다. 새벽에 내앞에서 기도하시는 어머니를 생각하고 이곳에  많은 어머니들을 생각해 본다. 확실하게 말할수 있다. 이곳에 모든 어머니들은 단  하나도 자신들을 위해 기도를 하지 않을것이라는것을...이곳에 모든 어머니들은  그들의 딸과 아들 그리고 남편을 위해서 이렇게 울부짖으면서 기도한다는것을 나 는 알수 있다. 그들이 한평생 두볼에 흘리는 그 눈물이 모두 가족을 위한 것이라 는것을... 한 가족의 어머니, 한가족의 아버지가 보이는 믿음은 자라나는 자녀들에게 엄청 난 하나님의 축복으로 내려온다. 자녀들은 이제 겨우 세상을 조금은 이해할수 있 는 시점에서 부모의 믿음과 사랑이 있었음을 깨닳고 황급히 뒤를 돌아보지만 세 월 앞에 무너저가는 부모에 늦은 한탄을 할 뿐이다. 나는 어머니에게 다가가서 어머니를 안고 기도를 했다. 어머니는 자신의 모든것 을 희생했고 약해지고 늙어지는동안 나는 그의 보살핌에 또한 그의 희생에 강해 지고 이렇게 어른이 되었다. 이제 내가 내 어머니를 위해서 기도를 할 순서이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4 <br><a href="viewContents.asp?seq=114984&amp;path=&amp;page=4&amp;vmode=full">4page</a><br><br> 돼지아빠  01 PIG DADDY 6 <br><a href="viewContents.asp?seq=114984&amp;path=&amp;page=5&amp;vmode=full">5page</a><br><br> 나의 오래 두고 사귄 벗 조현근이라는 친구가 있다.  현근이는 단국대 경영학과를 졸업한후 귀농을 해서 아버지의 뒤를 이어 1년전부터  고향에서 돼지를 키우고 있다. 한때 그 누구보다 더 열심히 공부를 하면서 취업도  준비했고, 행정고시도 준비하면서 자신의 꿈을 키위나가던 친구였다. 이런 친구의  아버지는 평생을 돼지를 키우면서 현근이와 그의 동생을 뒷바라지 하셨다. 내가  학창시절 친구집으로 놀러가면 울룩불룩 탄탄한 근육을 자랑하시는 친구의 아버 지를 볼수가 있었다. 하지만 2명의 아들들을 뒷바라지하기에는 넉넉치 못한 재산 과 함께 친구의 아버지도 새월앞에서는 장사가 될수 없었다. 굽어지는 허리와 세 어버린 머리카락. 아버지를 돌봐야했고, 동생을 뒷바라지 해야했기에 그는 그의  모든 꿈을 포기하고 돼지아빠가 되기로 결심했다.  친구가 운전하는 용달차 옆자리 앉아서 나에게 손을 흔드시는 친구의 아버지는  눈에 뛰게 외소해져 있으셨다. 친구는 나를 위해 작업복을 준비해두었다. 아침을  같이 알타리김치와 함께 뚝딱 해치우고 밖으로 나갔다. 친구의 집은 살림을 보태 기 위해서 개도 같이 키우고 있다. 아침은 먼저 개밥을 주는 것을 시작한다. 도축 장에서 가지고 온 소의 내장을 물과 사료와 함께 갈아서 먹이는 것이다. 나도 나름  비위가 강하다고 생각했지만, 개밥에서 나오는 매스꺼운 냄새에 구역질이 나서  힘들었다. 친구는 냄새가 심하냐며 코를 밖고 킁킁거리면서 냄새를 맡은후 자신 은 아무 냄새도 않나지 않는다며 나를 보고 웃었다.  8 <br><a href="viewContents.asp?seq=114984&amp;path=&amp;page=6&amp;vmode=full">6page</a><br><br> 10 <br><a href="viewContents.asp?seq=114984&amp;path=&amp;page=7&amp;vmode=full">7page</a><br><br> 강아지들은 나이별로, 성별로, 임신한 개들 별로 따로따로 키우고 있었다. 먹이를  가지고 친구가 우리로 들어가자 수십마리의 개들이 친구의 몸을 감싸면서 들뜨기  시작했다. 개를 키우면서는 그리 손이 많이 가지 않는다고 한다. 밥을 주고 똥을  치우는일이 전부라고 했다. 한발 구르마 끌면서 현근이는 말했다. “전에 소개팅나갔는대 여자가 나한태 뭐하냐고 물어보더라고. 그래서 다른일    한다고 둘러댈까 하다가 내가 하는 일에 떳떳하지 못한것 같아서 그냥 개랑     돼지를 키운다고 했지. 그러니깐 여자가 다소 놀라면서 개를 먹냐고 물어보    더라고. 그래서 저는 개를 먹지는 않지만 팔려고 기르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지.     그 뒤부터 여자가 나를 별로 좋와하지 않더라고. 농촌에서 돼지까지 키우고     있으니 나라도 만약 자신의 남자친구가 이런일 하면 부끄럽게 생각이 들겠지     아마.” 나도 개를 먹지는 않지만 식용으로 기르는 개를 먹는것과 소나 돼지를 먹는것이  과연 무슨 차이가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한국인이 개를 식용으로 먹는 한국문화 에 비난을 가한다면 그 한국인은 과연 한국인일까 생각해보았다. 넥타이를 매고  일하는 사람과 돼지를 키우는 사람과는 또한 무슨 차이가 있을까? 무슨무슨 위원 장, 무슨무슨 회장, 무슨무슨  코디네이터...본질적인 행실보다 그놈의 벼슬만 챙 기려는 뺀질뺀질한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한바탕 개똥을 치운후, 돼지먹이를 주기 시작했다. 돼지는 옥수수를 잘게 빤아 만 든 사료를 준다. 한 우리에 200마리정도가 살고있고, 칸마다 20~30마리가 부대 끼고 살아가고 있었다.  돼지먹이를 주기위해 한발 구르마를 끌며 중심을 잡고 힘들게 돼지우리안으로 들 어갔다. 우리 안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만큼 냄새와 독소로 가득찼다. 군에서 받는  화생방훈련처럼 돼지들의 똥으로 인해 발생하는 열기과 독소는 눈을 뜨기힘들정 도로 따가웠고 숨은 막혀왔다. 냄새는 이루말할수 없을정도로 지독했다. 이런 환 경에서 3개의 우리 대략 600마리의 돼지들의 먹이를 주고 똥을 치우면서 하루하 루를 보내는 친구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13 <br><a href="viewContents.asp?seq=114984&amp;path=&amp;page=8&amp;vmode=full">8page</a><br><br> 돼지들은 옥수수 사료를 정말 좋와했다. 사료를 넣어주자 마자 돼지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우리안에서도 양육강식이 존재했다. 강하고 덩치큰 돼지들은 사료통 에 머리를 밖고 자리를 차지했지만 약하고 덩치가 작은 돼지들은 덩치큰 돼지들 이 배를 다 채우고 빠질 때까지 기다려야했다. 마치 도덕의 굴레를 벗어난 인간  같아 보였다. 물질을 추구하며 자신의 배만을 채우려는 도덕적결핍의 인간말이다.  돼지가 사료를 다 먹고 난후 돼지 똥을 치웠다. 돼지똥을 치우는 일 역시 여간 힘 든일이 아니였다. 너무 딱딱하게 굳어서 망치로 부셔야하는 똥도 있었고, 정말 물 같이 멀근 똥도 있었다. 온몸에 똥이 튀는것은 예사일이였다. 눈에도 튀고 심지어 는 입안으로도 튀었다. 돼지고기를 재일 좋와하는 나로써 친구의 이런 힘든 노역 으로 내가 맛있는 돼지 고기를 먹을수 있구나 생각이들었다. 개를 키우고 돼지를 키우는 것은 하루종일 똥속에서 살아가는 삶이였다. 많은 사 람들을 위해 가장 더러운 것을 해야하는것이 이 직업이다. 친구의 소개팅 이야기 처럼 많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직업이고 20대의 친구에게는 자신이 하는 일에 자 격지심까지 들게 만들수 있는 직업이 이 일이다. 하지만 친구는 이 삶속에서 그 어 느누구보다 즐거움을 느낀다. 나는 그런 친구의 모습에서 진정한 겸손이 보였다.  말구유에 태어나신 예수님 처럼 가장 낮아지는 삶. 15명이 넘는 친구들중에서 10명이상은 크리스찬들이다. 현근이는 오래전부터 교 회를 대리고가면서 전도를 하고 있는 친구이다. 친구는 기독교에 대한 거부반응 은 없으나 아직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책읽기를 좋와하는 친 구는 성경은 한번은 읽고 싶다고 말해왔던 것이여서 나는 하루일과가 끝나고 친 구에게 성경책을 선물로 사주었다. 나에게 큰 동기부여를 주는 친구와의 하루가  참 소중했다. 몇달전 누군가 대화중에 나의 시골 친구들에 대해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주변에 가난한 친구들을 하나님이 부쳐주시는 이유는 너가 어서 열심히 해서      그 친구들을 돌보라고 하나님이 그러시는거야.” 우리는 모든 일을 정리하고 같이 목욕탕을 갔다. 친구의 등을 밀어주면서 말했다. “야 너랑 나랑 친군대 나만 천국가고 넌 지옥가면 안돼 임마. 친구는 도둑질을     해도 같이 해야하는거야. 내가 크리스찬이니깐 , 너가 지금 교회다니기 싫어     다니지 않아도 어디서 너 종교가 뭐냐물으면 크리스찬이라고해” 14 <br><a href="viewContents.asp?seq=114984&amp;path=&amp;page=9&amp;vmode=full">9page</a><br><br> 상사리   02 Sang sa-ri 16 <br><a href="viewContents.asp?seq=114984&amp;path=&amp;page=10&amp;vmode=full">10page</a><br><br> 포항시 북구 죽장면에서 1시간을 더 산을 타고 들어가면 오지중에 오지마을인 상 사리가 나온다. 마을 전체 가구수가 15채도 않되는 이곳은 내가 20년전 살던 내  고향이였다.   영화“월컴투 동막골”이나“집으로”처럼 겹겹히 거대한 산에 감추어져 교통도 없 는 정말외딴 시골중에 시골이였다. 20년전 그 당시에는 30가구가 넘었던것으로  기억인 난다. 마을 제일 부자집에서 동네 최초로 TV를 사서 마을 사람들과 아이 들이 그 집 마당에서 모이면 10살쯤되었던 여자아이는 방문을 열고 동네사람들 은 50원씩 내고 마당에 않아서 티비를 보던 그런 마을이였다.  이 상사리에는 교회가 없었다. 내 어린시절 기억으로 그 옛날 목사님이 시멘트벽 돌을 쌓아올려 단상을 만들고 천막을 치고 주일에 예배를 보셨고 가끔씩 포항시 에서 대학생들이 찾아와서 찬송과 율동을 가르쳐주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나 의 어머님과 함께 3명의 집사님이 교회를 개척하시고 이 오지 상사리도 하나님의  집이 생긴것이다. 세월에 속아 살아가다보니 현실은 과거를 어느새 창고 깊숙히 박스에 넣어 두고  먼지가 잔뜩 쌓이도록 방치해두었는대, 20년 만에 창고정리는 나선 나에게 한 노 목사님이 찾아오셔서 돕기를 자청하셨다. 18 <br><a href="viewContents.asp?seq=114984&amp;path=&amp;page=11&amp;vmode=full">11page</a><br><br> 20 노목사 아련한 추억을 등에 업고 마을의 가장 높은곳에 위치한 교회에 들어섰다.  추위에 오그라든 정원에 꽃들과 얼어버린 빨래줄의 빨래들은 상사교회라는 켄버 스에 자리를 매우고 있었다. “목사님..목사님”   강아지가 심하게 짖으며 뛰쳐 나오다 쇠말뚝에 매인 목줄에 목이 당겨져“께갱” 하고  다시 뒤로 튕겨 자빠졌다. 나는 목사님을 불르면서 교회를 끼고 돌았다. 그 러자 한 모퉁이에서 60이 넘어보이는 노파가 나무보일러에 나무를 넣기 위해 씨 름을 하고 있었다. 때가 낀 청바지에 채크무늬 점퍼, 희색 쭈그러진 모자 그리고  고무신이 눈에 들어왔다. 코메디 프로에서나 보는 동네 이장님이 같아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제가 상사교회 다님목사입니다. 먼길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손님이 먼대서 오신다기에 따뜻하게 대접해드려야지요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하고 다시 나무를 보일러에 열심히 넣으셨다. 목사님의 사택안은 과해서 쓸대없는 버림이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옹기종기 위 치한 물건들은 복잡함보다는 알뜰함이 돋보였다. 사모님과 단 둘이 생활하시는  공간은 협소해 보였지만 또한 넉넉했다. 이 목사님은 6년째 이 상사에서 목회를  하시고 계신다고 말씀하셨다. 교회의 교원수가 8명뿐인이곳에서 아직 이 조금한  마을전체도 전도를 못했으니 내가 게을르고 죄많아서 하나님보기에 부끄럽다며  말씀을 시작하셨다. 목사님의 사역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시골에 많은 노역을 돕 는것이 가장 큰 일이였다. 손톱에 낀 흙과 구멍난 양말에서 목사님의 사역에  고 됨을 짐작할수 있었다. <br><a href="viewContents.asp?seq=114984&amp;path=&amp;page=12&amp;vmode=full">12page</a><br><br> 22 노목사님을 따라서 아침부터 목사님의 봉고차를 타고 도착한곳은 끝도 없이 펼쳐진 배추밭이였다.  올해 배추값이 심하게 떨어져서 팔아봤자 손해라고 해서 그대로 방치된 배추밭이 였다. 할어버지 혼자사시는 이집은 배추를 뽑아서 버려야하는대 일손이 없어서  마냥 그대로 두고 계시고 계셨다. 목사님은 칼을 들고 팔을 걷어붙치시고 배추를  하나하나 뽑기시작했다. 나도 장갑을 끼고 칼을 들고 배추의 밑단을 싹둑싹둑 잘 라내었다. 하지만 정말 끝도 않보이는 배추밭에 난감함을 금치 못했다.  “저희가 다 할수 있을까요?” “당연히 오늘 다 못하죠. 하지만 다 할때까지 계속 틈틈이 하는거죠” 어디서 저렇게 평온한 실천이 나오는것인지 궁금했다. 우리는 수없이 우리의 잣 대로 태산처럼 높고 바다처럼 깊어서 해낼수 없다고 생각하는대 말이다. 해가 머 리를 밣고 올라서서야 배추작업을 마무리 하고 다른 장소로 이동을 했다.  다음장소는 교회의 권사님 집으로 이동해서 지붕을 수리했다. 지붕천장에 나무가  떨어져 깨져있었다. 처음에 내가 올라갔지만 내 무게를 지탱하기에는 너무 오래 된 지붕이였다. 목사님은 홍길동처럼 훌쩍 지붕위로 올라가서 나에게 못과 망치 를 전달해 달라고 손짓하셨다. 30분만에 뚝딱 지붕을 수리하고 권사님이 해주신  맛있는 밥을 먹었다. <br><a href="viewContents.asp?seq=114984&amp;path=&amp;page=13&amp;vmode=full">13page</a><br><br> 24 <br><a href="viewContents.asp?seq=114984&amp;path=&amp;page=14&amp;vmode=full">14page</a><br><br> 딸깜 이상사리에서 가장 젊으신 분이 40세가 넘으신다. 10가구정도 남은 이곳에 모든  사람들이 할머니 할아버지라는 소리이다. 자녀들은 모두 도시로 떠나고 힘없는 노 인분들만 홀로 쓸쓸히 살아가신다. 네비게이션에도 나오지 않는 오지이다보니 먹 을것도 변변치 않고 살림또한 넉넉치 못하다. 산이 마을을 끌어 않고 살아가는 마 을이다보니 계곡을 타고 한랭한 바람은 겨울보다 먼저 온다. 이곳에서 보일러는  정말 할머니,할아버지들의 생명과도 관계가 있다. 하지만 기름값이 없어 이곳에  절반은 나무보일러를 이용하신다. 쉽게 설명해보자, 하루기준으로 나무를 태워서 방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서는 전 봇대 만한 크기와 둘레의 나무를 적어도 2개는 태워야 한다. 겨울을 3달로 잡았 을때 적어도 전봇대 크기의 나무 60개가 필요하다는 소리이다. 거기에다 나무에  처음 불을 붙이기 위해서는 싸리나무도 필요하고 지푸라기도 필요하다. 그럼 이 런 나무들은 어디있는가. 산으로 올라가야한다. 이곳에 나무보일러를 쓰시는 분 들의 평균 나이는 60살정도가 된다. 60이 넘으신 노인분들이 산으로 톱을들고  올라가 전봇대만한 나무 60개를 해오셔야한다. 말이 되지 않는 소리이다. 한 할 머니가 나에게 말했다. “지난해는 아들이 추석에 와서 산에서 나무를 해주고 갔는대 올해는 일이 너무     바빠서 못왔거든. 땔깜 구하는것이 제일 큰 걱정인대 그래도 목사님이 틈틈히     구해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 그러한 사정의 노인분들이 이곳에는 많았다. 여기 노인분들도 그리고 그분들의  자녀들도 삶이 넉넉치 못하다보니 하루하루사는데 힘에 벅찬것이다. 이런 분들을  위해 목사님은 산에서 매일 나무를 해오신다. 경사가 80도간 넘는 가파른 산등선 을 오르면서 골리앗처럼 커다란 나무들을 베어내시는 목사님. 처음에는 많이 다 치고 한동안은 몸살로 앓아 누우신적도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건강한것을 보면 그리고 이렇게 나무 할 기력이 있는것을 보면 하나님이 내가 죽 는것은 상관 하시지 않으셔도 이 동네사람들 얼어죽는꼴은 보기 싫어하시는 것같 다고 말하셨다.  “이게 겨울에 이마을에 가장 중요한 사역이랍니다.” 목사님의 톱과 장갑을 넘겨 받았다. 땔감정도야 별거아니라는 자신감이 쏫았다. “제가 할수 있는 최대의 양을 땔감을 해드리겠습니다.” 자신감은 한시간만에 불안함으로 변해버렸다. 비탈길을 계속걸어서 발에 물집이  났다. 나무를 하도 들어서 허리가 끊어질듯이 아팠다. 목장갑은 닳아 찢어진지 오 래였고 나무끈을 이용해 소가 지게를 끌듯이 어깨로 나무를 산 아래로 끌다보니  양쪽어깨에 피명이 들었다. 큰소리 쳤는대 너무 힘들어서 많이 못해가는것은 아닐 까하고 걱정이 들었다. “아니 이런일을 어떻게 저 목사님이 혼자 하실수 있을까?”  나 도 평생에 수많은 노동을 해봤지만 이번처럼 힘에 부치는 일은 처음이였다. 몸 이 아프다 보니 어느정도 해드리고 그만할까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산만큼 땔감을  해갔을때 기뻐하실 할머니 할아버지를 생각하니 다시 힘을 내야겠다는 생각을 했 다. 하나님의 마음처럼 할머니할어버지를 긍휼이 여기는 마음이 아니고서는 도저 히 할수없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노목사님의 마음에 진실로 존경심이 들었다. 나무를 짜르고 경운기에 실은후 할머니 할아버지 집집마다 보일러 옆에 차곡차곡  쌓아드렸다. 기분이 좋고 보람도 찼지만 많이 했다고 했는대도 아직 많은 양이 부 족한것에 가슴이 아팠다. “하나님이 알아서 채워주시겠지...” 26 <br><a href="viewContents.asp?seq=114984&amp;path=&amp;page=15&amp;vmode=full">15page</a><br><br> 상사교회의 새벽기도 이곳 상사의 새벽은 71살로 같은 나이의 두분은 권사님의 기도로 시작된다. 두권사님 과 교회와의 거리는 성인이 평균 걸었을때 15분정도가 걸린다. 그러니 이 두분의 권사 님이 걸어서 교회에 오시는 시간은 평균 30분이 넘는다는 말이된다. 상사의 새벽은 개 집에 개들도 추워서 낑낑거릴 정도로 매섭다. 새벽 4시에 먼저 일어나신 분이 전화를  하고 윗마을에 사는 김권사님이 내려오시는것을 조권사님이 마당에서 기다리시다가  만나서 같이 교회까지 걸어오신다고 하신다. 오들오들 떨며서 교회에 도착해도 초겨울  동장군은 자비심이 없다. 교회에 히터기는 오래전에 고장나서 목사님의 말씀선포의 입 속에서 허연 입김이 연신 뿜어져 나온다.  이분들의 기도는 그렇게 소란스럽지도 않다. 기도하는 교회안은 마치 조용한 새벽과의  조우같다. 웅웅거리며 창문을 비비는 바람소리가 들린다. 두손을 꼭 감싸쥔 모습과 겸 손하게 고개숙인 두권사님과 교회 바닥에 이불을 덮으시고 기도하시는 사모님의 모습 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오후에 조권사님이 점심에 초대해주셔서 윗마을로 올갔다.   할머님께서 직접 하신 음식들은 보기만해도 침이 났다. 헐머니는 23살 매화꽃처럼 아 름다운 향기와 함께 이 상사로 시집을 왔다. 평생을 하나님을 영접하지 않고 끝내 가 신 할아버지의 핍박속에서 믿음생활은 고난의 연속이였다고 한다. 교회간다는 것으로  인해 많이 맞기도 하셨다고 한다. 배운것이 없어 처음엔 글도 읽기 힘들던 시절 목사 님의 말씀을 듣는것으로 성경을 배워가고 하루의 삶에 힘을 얻었다는 할머니는 이제  아들을 전도사로 키우시고 이 시골에서 마지막 하나님나라로 가는 날까지 그저 말씀  보다가 조용히 하늘나라를 가기를 기도하신다고 한다. 행여 아파 누워서 병원에 라도  간다면 넉넉치 못한 살림에 아들에게 피해라면서... 28 <br><a href="viewContents.asp?seq=114984&amp;path=&amp;page=16&amp;vmode=full">16page</a><br><br> 상사를 떠나면서 수요 저녁예배를 마지막으로 2박 3일의 생활을 마쳤다. 내 두손을 한분한분이 꼬옥  쥐어주시면서 와줘서 고맙다고 하셨다. 귤도 챙겨주시고, 검은콩도 챙겨주시면서 조심 해서 가라고 하시며 마을 아래까지 따라오셨다. 언제 내가 다시 이곳에 올지 몰른다.  어쩌면 몇년안에 이마을은 없어질지도 모른다. 아쉬움을 마을에 두고 떠났다.  “하나님께 이곳을 위한 한가지 소원이 있었다면 매년 누군가가 와서 이분들을 위한      땔감을 해주기를 기도합니다. 이 분들이 하늘나라로 가는 날까지 말이예요” 30 <br><a href="viewContents.asp?seq=114984&amp;path=&amp;page=17&amp;vmode=full">17page</a><br><br> 32 <br><a href="viewContents.asp?seq=114984&amp;path=&amp;page=18&amp;vmode=full">18page</a><br><br> 청학농예원     03 Chung -hak nursing home 34 <br><a href="viewContents.asp?seq=114984&amp;path=&amp;page=19&amp;vmode=full">19page</a><br><br> 청학농예원 청학농예원은 1953년 전쟁으로 인해 상처받은 아이들과 부랑민들을 위해 설립되었다.  보육원이 위치한 영도는 외딴섬에 산정상에 위치하여 오래전 당시 수많은 거지들이 산 을 기점으로 거지촌을 이루고 있었다고 한다. 이제는 부산을 대표하는 보육원으로 성장 해서 많은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아이들의 영혼을 치료하고 돌보고 있다. 보육원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듣고 나는 복지사님의 안내에 따라 요양원 안으로 들어 갔다. 할머니 할어버지들이 요양하시는 요양원은 가끔씩 문을 열고 도망을 가시는 분들이 있 어서 자동잠금장치문을 사용했다. 기도하는 마음을 가슴에 품고 복지사님을 따라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런대 나의 그 마음은 어디로 갔는지 순간 시큼한 냄새가 코를 찔러  뒤로 주춤했다.  따뜻한 백열등과 함께 창밖으로 들어오는 햇볕으로 밝은 실내에서 어떻게 보면 조금은  비정상적인 자세로 누워계시거나 앉아게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모습에서 나는 처 음 두려움의 감정을 받았다. 이상한 말을 하시는 할머니, 벽에 똥을 바르시는 치매노 인들. 욕을하고 화를 내시는 분들...   옛날에는 대가족으로 우리는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생과 죽음에 모든것을 가까이 서 지켜봤다. 생명이 탄생하고 형제자매와 함께 부모의 교육이 가정에서 이루어지고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손자사랑이 넘치던 가족. 상을 3개나 준비해서 마루에 모여서  다같이 밥을 먹고 할아버지 수저를 드실때까지 기다리지 못해 손으로 음식을 집어먹는  어린아이를 혼내는 어머니... 그리고 생을 다해 돌아가신 노부모의 장례에서까지 모든 것이 대가족안에서 이루어지던 그것들이 이제는 사라지고 가족의 붕괴와 사회 편리라 는 명목하에 떨어져나간 가족의 기능의 상실은 이렇게 노인에 대한 생소한 감정까지  생기게 만든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할머니들의 영혼을 우리가 어떻게 달래드릴수 있을까.” 37 <br><a href="viewContents.asp?seq=114984&amp;path=&amp;page=20&amp;vmode=full">20page</a><br><br> 얼굴에 반을 가릴만큰 큰 안경을 쓰시고 앉아 계신던 한 할머니는 이혼 후  젊을때부터  혼자 살으셨다고 한다. 전쟁이 끝난후 먹고 살기 위해 만주로 간후 이불장사하면서 돈 을 악착같이 벌으셨다고 한다. 하지만 혼자 살다보니 그리 쓸대가 없어서 항상 벌어온  돈을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면서 살다가 이제 죽을때 되서 이곳에 오셨다고 말씀하셨 다. 할머니는 지금도 3만원을 양말에 숨겨두시고 가난한 사람 보면 준다고 말하신다. 몸이 편찮아 오래동안 병상에 누워서 지내시는 할머니는 천장에 있는 전구다마에서 항 상 얼굴이 보이신다고 말씀하신다. 누가 보이십니까 물어보니 항상 손을 가슴에 언고  마음깊숙히 간직된 사람이 보인다고 말씀 하셨다. 누굴까 그 마음 깊숙히 간직된 사람 이... 젊었을때는 남자 많이 울렸다면서 회상을 하시는 할머니. 지금은 늙어서 쭈글쭈글해서  이렇게 여기 있지만 옛날에는 남자들이 하도 따라다녀서 귀찮았다면서 나랑 데이트 하 자는 소리는 하지도 말라시는 할머니. 아들과 남편을 먼저 잃으시고 그 충격으로 치매에 걸리신 할머니. 그 가슴의 고통이  얼마나 컸으면 이제 할머니는 마냥 웃으시기만 하신다. 성경을 30번이상이나 읽으신 할머니는 아직도 무슨 뜻인지 모르고 그냥 읽으신다고  하신다. 할머니는 성경 많이 읽으셔서 천국가시겠어요라고 말하자 예수잘믿어야지 천 국가지라고 나를 혼내셨다. 연신 감사합니다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면서 내 손을 꼽잡아주시는 할머 니. 그 기력이 떨어진 손에서는 이젠 차가운 죽음의 체온이 느껴졌다. 무엇을 훔치려 왔냐며 나를 마구 혼내시는 치매걸리신 할머니는 하나님이 다 보고 있 으니깐 뭘 훔쳐갈생각을 말라며 나를 마구 혼내신다. 아들이 보고싶다고 아들이 보고싶다고 울으시는 할머니는 내가 어떻게 달래드려야할 지 알지 못했다. 너무나 많은 사연으로 가득찬 이곳에 할머니 할아버지 앞에서 가슴속에서부터 눈물이  쏫아졌다. 우리도 언젠가는 세월을 등에 업고 살아가야하는 때가 있는대 왜 이렇게 그 들의 부모를 이곳에 두고 가는것일까... 너무나 속상하고 속상했다. 38 <br><a href="viewContents.asp?seq=114984&amp;path=&amp;page=21&amp;vmode=full">21page</a><br><br> 고신대 간호학과 학생들 고신대 간호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을 만났다. 한 학생은 아픈노인분들을 상 대하는일이다 보니 노인분들이 요구가 많다는 말로 대회를 시작했다. 그  모든 요구를 다 들어줄수가 없다보니 노인분들의 불만이 늘고 화를 내고  때리는 분들이 많아진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긍휼한 마음으로 대해드려야 지 하면서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한다. 한 학생은 목욕도 시키고 기 저귀도 갈고 고름같은것도 짜내면서 처음에는 토하고 그랬는대 비위가 많 이 강해지는것같다며 말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많이 무서웠습니다.  저도 저렇게 될까하고 생각하면 소름이     끼쳤죠. 말장난으로만하던 벽에 똥을 바르는 할머니들이 정말 이곳에     있고 여기 냄새도 너무 심했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익숙해지면서     그런 할머니들이 귀여웠지더라고요. 마치 다시 아이로 돌아간 이분들을     돌보면서 이제는 보람을 느낍니다.” 아이와 노인에 공통점이 무엇일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들에게는 욕심이  없다는것이다. 순수함이 어디에서 영향을 받는지 생각해 볼수 있었다.  사람을 돌보는 간호학에는 인간적으로 참 힘들고 더럽고 어려운 일이 많 다고 한다.  “간호학과 학생들중에서 믿음이 있는 친구들과 그렇지 않은 친구들이 있    습니다. 어려운 일을 극복하는 방법에서 차이가 있죠. 믿음이 있는 친    구들은 종교와 하나님이라는 태두리안에서 서로 위로하고 믿음으로 이    기려고 힘씁니다. 기도모임도 있고 말씀 모임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학생들은 술로 스트레스와 어려움을 이기려 합니다. 어느것이 더 좋다고     말씀드릴수는 없어도, 한가지 분명히 말씀드릴수 있는것은 저희 믿음이     있는 친구들은 언제나 마음이 평안합니다.” 기도와 말씀이 이 일을 지탱하는 영적인 힘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하며 다 시 할머니들의 혈압을 채크하는 이 학생의 마음씨가 참 아름다웠다. 육체 를 넘어 영을 치료할수 있는 간호사가 되길 기도했다. 40 <br><a href="viewContents.asp?seq=114984&amp;path=&amp;page=22&amp;vmode=full">22page</a><br><br> 43 <br><a href="viewContents.asp?seq=114984&amp;path=&amp;page=23&amp;vmode=full">23page</a><br><br> 요양간호사분들 “죽는게 당연하지만 이렇게 고통받으면서 죽는것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이곳에서 7년째 노인분들을 보육하시는 요양간호사님은 안경을 다시 고쳐쓰시면서  말씀하셨다. “우리의 미래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미래를 버려두는 이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습니 다. 이곳에 노인분들이 자녀들에게 버림받아 이곳으로 오실때 그 아픔을 이해하려  노력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제가 노력 해도 하나님 마음처럼 이 노인분들을 가족처럼  대하기가 힘듭니다. 이 노인분들도 우리가 아무리 애를 써도 가족처럼 생각하지 않습 니다. 이분들은 항상 외롭다고 말합니다. 그럴때마다 가슴이 아프죠.” 옛날에 고려장이 있다가 없어졌지만, 현대에 다시 생겨난것이 이것이라고 이것이  현대판 고려장이라고 말하고 싶다. 자신의 모든 기력과 정성을 다 소비하고 딸자식을 키웠지만 이렇게 노후에는 쓸쓸히  남겨진 이분들을 보면서 가족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부모를 모시지 않 는 것은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 큰 죄중에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요양간호사가 되기위해 실습나오신 분들 “먹고살려고 한다고 해도 못하겠다.” 이곳에 나보다 젊은사람이 이런것을 왜 하는지 이해가 않될만큼 힘들다며 젊은 사람 이 이일을 하겠다면 절대적으로 말리겠다고 하시면서도 열심히 할머니 다리를 맛사 지 하셨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요양간호사님들이 수고하는 모습에서 이런 생각을 하는 내자    신을 보니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아직은 없지만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44 <br><a href="viewContents.asp?seq=114984&amp;path=&amp;page=24&amp;vmode=full">24page</a><br><br> 사회봉지사  “처음에 입사했을때는 혈기로 했지만 지금은 노인분들의 행동이 왜 그럴까 공부를     합니다. 오랜 경력자분들은 저희와는 다르게 저희가 없는 포옹력이 있는듯합니다.” 이제 3년차인 이분은 이 보육원에서 노인분들의 레크레이션을 담당하신다. 남자친구 도 있는대 일이 너무 많다보니 만날시간도 없어서 남자친구가 해어질듯 협박을 한다며  웃으셨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때리고 소리를 지를때 또 말을 않들으실때도 많고, 자식이나     외부인이 왔을때는 잘대해주는대 정작 우리에게는 막대할때 조금 섭섭함을 느낍니    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우리를 가족으로 생각하지 않는 분들이 많습니다.” 없는 상황에서 아무것도 아닌 내가 해야할것이 자선이지, 돈있는자가 유명한 자가  하는거이 자선사업이 아닌듯하다면서 나에게 말해주셨다. “저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입니다. 그래서 합니다” 사회봉사자들 학교에서 패싸움, 절도등으로 어긋나던 학생들이 여기 요양원에 자원봉사판정을 받고  봉사를 하고 있었다. 그 혈기와성한 아이들도 치매노인들을 보고선 주춤하곤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아이들이 이분들과 지내는 시간동안 학생들은 잘못을 뉘우치고  다음에는 이런일이 아닌 진정한 봉사로 찾아오겠다고 말하고 돌아가고 정말로 많은 학 생들이 친구들을 대리고 다시 이곳을 찾아 온다. “나쁜일로 이곳을 찾아온것이 부끄럽죠, 다음에는 좋은 일로 올겁니다.” 46 <br><a href="viewContents.asp?seq=114984&amp;path=&amp;page=25&amp;vmode=full">25page</a><br><br> 노인복지원 원장님 “니가 일하는것이 아니라 내가 일한다. 나는 너를 내 칠수도 있고 세상 누구보다 더     높일수도 있다. 가난한 자를 돌보는것이 나의 관심사 이기에 나의 영광과 의를 너를     통해 드러낼수 있도록 정의롭게 똑바로 일하라.” 항상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며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그 음성을 항상 간직하면서 최대한 이곳에 노인분들이 편안하게 하나님나라로 가시게     도와드리는것이 자신이 할수 있는 전부입니다. 나이 어린 내가 생의 마지막까지 오신     분들에게 해 드릴것은 없죠. 그저 같이     있어드리는것이 내가 할수 있는 최선이고       그분들도 그것을 원하시거든요. 조금이나마    허전함을 덜어드리기 위해서 말이예요.” 어린이복지원 원장님 옛날 여기의 모든 아이들은 보모가 없는 고아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보모가 없 는 고아보다는 가족해체로 버려진 아이들이나 학대로 인해 부모와 경리된 아이들이  전부이다. 어린 아이가 부모로 부터 버림을 받거나 학대를 받아서 이곳으로 왔기에  그 아이의 심정을 이해해하고 녹이는것이 가장 힘든 일이다.  “부모로 부터 버림받은 아이가 과연 누구를 믿을수 있겠어요. 우리는 이곳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분들과 아이들의 믿음에 관계를 회복하는것을 넘어 하나님을      아이들이 만나게 하기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그 진리와 변함없는 믿음을 주는것이지요” 청학농예원 이사장님 “크리스찬으로써의 인생의 가치가 돈에 있지 않고 더 큰 하나님의 뜻에 있다는 것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70이 넘으신 이사장님은 어릴때 가난한 가정환경으로 인하여 학교공부를 하지 못했다 고 한다. 그래서 어린나이에 수많은 일을 하면서 돈을 모으셨다. 열심히 일한 보람으 로 땅도 사고 집도 사면서 20살이 되셨을때는 스스로 일어설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심한 기침과 함께 피를 토했다. 폐렴이였다고 한다. 그당시 폐렴이라고 하면 죽 을 병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기적적으로 병이 완치되고 돈이라는것도 죽음면 부질없 다는것을 깨닳으셨다고 한다. 23살 가진 모든 재산을 팔아서 영도의 산정상에 전쟁고 아와 피난민 그리고 거지들을 돌보기 시작하셨다. “사람낚는 어부가 되라고 하나님이 베드로에게 말씀하신것처럼 한평생을 노인과 아    이들을 위해 살아오면서 이제 죽을 나이가 다 되어서 돌아보니 그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살아온것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식사를 하면서 손자가 100명이 넘고, 내 소유는 아니지만 내 명의로 된 집이 100가구 가 넘는다고 말하시면서 나처럼 부자가 세상에 또 어디있겠냐며 즐거워하셨다. 48 <br><a href="viewContents.asp?seq=114984&amp;path=&amp;page=26&amp;vmode=full">26page</a><br><br> 50 <br><a href="viewContents.asp?seq=114984&amp;path=&amp;page=27&amp;vmode=full">27page</a><br><br> 한국사역을 마치며 한국사역은 선교팀과 함께 거의 한달하고 보름을 기도로 준비한 것이였다. 한국을  들어가기 전까지 나는 거룩한 믿음으로 넘쳐날듯이 보였다. 하지만 한국에 도착한 후  초코렛보다 닮콤한 유혹으로 악은 다가오기 시작했다. 부모님을 만나고 친구들을 만나 면서 너무나 행복 순간의 연속이였다. 하지만 사역을 하기로 생각하고 있던 시간들이  다가오자 진심으로 하기 싫다는 생각이 크게 들었다. 마음뿐만이 아니였다. 목밑까지  치닺는 그 거부반응은 그 어느것보다 더 심각했다. 그리고 하기싫다고 중얼거리기  일수였다. 나는 그 소중한 시간에서 7일이라는 시간을 사역으로 써야했다. 친구들과 신나게 지낼 수 있는 시간. 친구들은 나에게 왜 해야하느나고 물었다. 뉴욕 돌아갈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대 같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며 나에게 말했다. 거짓으로 내가 준비한 사역을 했 다고 말해도 그누구도 모르는 일이다. 거짓을 사진을 찍고 거짓으로 미사여구를 사용 해서 글을 쓴다면 그 누가 알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는 내 학비를 대기 위해서 피를 짜낸다고 하는대 사역으로 부모님이 아끼고  아껴서 주시는 용돈을 쓴다는것도 갑자기 아까웠지기 시작했다.  교통비, 식사, 숙소, 헌금... 사역이 시작되고나서는 언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모르게 즐겁게 했지만, 그 시작  전까지 나의 마음은 온통 시꺼멓게 악마와 함께 꾀를 짜내고 있었던것 같다. 하지만  내 잔꾀에 벌하실 하나님을 두려웠다. 내가 그 어느누구를 속일수 있어도 속일수 없는  분, 내 페부 깊숙히 숨겨둔 은밀함까지 아시는 그분, 내가 가장 사랑하면서도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그분. 하나님이 두려워 나는 사역을 시작했다. 그리고 마음이 평온해졌다.  이번 한국 사역을 기도로 준비로 함께 해준 선교팀과 The Tools 그리고 물질적으로  영적인 기도로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하늘 우체부 -  <br></bo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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